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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은 최초로 중국을 통일해 스스로 황제에 등극한 인물이다. 그러나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 누구도 혼자만의 힘으로 거대한 성과를 거둘 수 없는데도 말이다.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하기까지 매우 큰 공을 세운 자로 단연 저리자(樗裏子, BC?-BC300)를 빼놓을 수 없다.
저리자는 진나라 혜왕의 배다른 동생으로, 지혜가 풍부해 ‘지혜의 주머니’라고 불렸다. 이런 저리자가 풍수계에도 전설적인 인물이다. 다소 의외라 생각할 수 있는데, 그는 좋은 곳에 묘를 쓰면 복을 받아 잘된다는 장지흥왕설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장지흥왕설은 비록 후세 학자들에 의해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현재까지도 음택풍수가 발전하고 선호되는 근본이 된 논리다. 효라는 관점에서 보면 비판만이 능사가 아니라 할 것이다. 부모가 살아서 효를 다하고 돌아가신 후에도 효를 다해야 한다는 명분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효를 실천할 것을 요구만 한 것이 아니라 효를 실천하면 반드시 복이 돌아갈 것이라는 반대급부를 제시하고 있다. 굉장히 앞선 사고이고 현대적인 논리와도 부합하고 있어 칭찬받아 마땅하다. 이미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사고가 풍수이론 속에 수용됐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기’(史記)의 기록에 따르면, 저리자 사후에 위남 장대의 동쪽에 묻혔는데, 그는 생전에 자신의 묘지 양측에 천자의 궁전이 들어선다고 예측했다. 한나라 때에 이르러 마침 장락궁이 묘지의 동쪽에, 미앙궁은 그 서쪽에 들어선다. 그의 예측이 정확히 들어맞았던 것이다. 이 예측으로 인해 저리자는 풍수 역사상 전설적인 인물이 되어 후세 풍수가들에 의해 장지흥왕론의 기여자라고 추앙받고 있다. 현재 저리자의 무덤은 남아 있지 않으나, 굉장히 흥미로운 예측을 했고 저리자의 주장이 맞았으므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유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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